어머님 시골집 하면 예전부터 재미있는 추억이 많이 있습니다.
안양에서 천안가는 버스를 타고. 천안에서 공주가는 버스를 타고 나면…
그 어린나이에 왜이리 몸이 피곤하고 힘들던지…..
공주에 도착하면… 택시를 타곤했는데..
택시에서 외할아버지 이름을 말하면.. 그냥 할어버지 댁으로 태워주셨어요
아마 90년도 초반의 기억들이 많이 남아있는데.. 지금까지 이해 못하던 일들이 있어서.
어머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어머님 공주에서 택시만 타고… 외할아버지 이름 말하면 바로 택시타고 30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데려다 줬는데
외할아버지가 유명하신 분이었어요??
그냥 땅 많고 식구 많고….소 많고. 그러다 보니 유명했지….
식구라니요??
너 이모 삼촌 다 합치면 10명 넘잖아..
거기에다가 친형제 말구 같이 사는 형제 아주머니 아저씨만 해도 많았지…
엥??
같이 사는 아주머니 아저씨.. ??
혹시 요즘에 지방 섬노예 같은 거에요???
갑자기 이 이야기를 듣고는 어머님 눈빛이 불꽃슛 통키 마냥… 활활 타오르며..
처음 듣는 진솔된 이야기를 해주셨습니다
농사짓던 시골에는 부자들도 있지만
집 없고. 가난한 사람들도 많이 있었다고…
그 가난한 사람들이 살 집이 없고.. 그 자식들이 배울수 없는 환경이면.
어차피 농사짓는 뻔한 일이기에
부자들이 집 지어주고. 그 집에서 살게끔 해주면서… 같이 농사짓고.. 소 기르는 가축 일도 같이 했다고.
그러다보니 정들고…그 자식들이랑 같이 학교 다니며. 친구를 넘어 가족같이 가깝게 지냈다는 일입니다.
어쩐지 어렸을때 시골에 가면.. 분명 친 가족은 아닌데.. 친 가족처럼 같이 어울리는 사람들이 많이 있었거든요
그러면서 어머님께서
섬노예처럼 사람의 인생을 통제하는게 아닌..
집 사주고 자식들 결혼할때도 도움주고… 정말 정이 있었던 생활이었다며..
요즘에는 정말 생각조차 못하는 그런 삶이었다고.
너는 모를꺼라고….
자신의 욕심만 생각하는 현실이 아닌 나와 내 가족과 내 이웃이 어울리던. 그런 과거가.
그리고 오래되지 않았다는 생각에.. 뭔가 아쉬우면서..이제는 그런 생활이 불가능하지 않을까 하는.
그런 생각도 가지게 되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