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9-06 요즘 드는 생각, 그리고 10년의 기록

요즘 드는 생각, 그리고 10년의 기록
요즘 문득 마음의 여유가 없다는 생각을 자주 한다.
남들에게 구태여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난 시간은 피를 말리는 긴장의 연속이었다.
지난 10년 동안 이성과 단둘이 식사를 한 적도 없다.
누군가의 손을 잡고 연애다운 연애를 했던 기억은 30대 초반에 멈춰 있다.
이제는 이성을 향한 감정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희미해질 때가 있다.
가끔 멜로 영화를 볼 때면 ‘아, 저런 기분이었지’ 하며 낡은 오르골을 열어보듯 과거의 감각을 잠시 꺼내볼 뿐이다.
돌아보면 결과는 항상 나쁘지 않았다. 아니, 객관적으로는 좋았다고 해야 맞다.
하지만 그 결과를 만들기까지의 과정은 매 순간 고통스러웠고,
상황이 안정된 지금조차 습관처럼 밴 걱정은 완전히 가시지 않는다.
인생의 방향이 바뀐 것은 2016년이었다.
우리 집은 남부럽지 않게 넉넉했다. 세입자 생활 한 번 겪어보지 않았고,
할아버지의 서울 단독주택에서 시작해 안양의 신축 아파트로, 다시 새 아파트와 단독주택으로 이어지는 주거 환경에서 자랐다. 24평으로 리모델링한 단독주택 1층은 내 독립적인 공간이었고, 2층에는 부모님이 계셨다. 일찍 가정을 꾸린 누나도 안정적으로 잘 살고 있었다.
부족함 없는 환경에서 소비, 연애, 여행, 일에 몰두하며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지내던 시절이었다.
그러나 2016년, 아버지께서 뇌졸중으로 쓰러지셨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당뇨를 앓으시던 어머니마저 연속으로 두 번의 암 수술을 받으셨다. 집안의 기둥이 흔들리는 듯한 충격이었다.
결과적으로 아버지는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한쪽 다리만 약간 불편하실 뿐 건강을 유지하고 계신다. 어머니 역시 두 번의 암 모두 조기 발견되어 항암 치료 없이 10년을 무탈하게 넘기셨다.
하지만 당시 나를 짓눌렀던 불안은 쉽게 사라지지 않았다. 사람이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는 공포는 마음의 여유를 송두리째 앗아갔다. 누군가에게 마음을 쏟거나 정을 줄 여유 따위는 사치였다.
그때부터 매달 월급의 250만 원가량을 악착같이 모았다. 어떻게든 우리 집의 미래를 내 손으로 지탱해야 한다는 강박 때문이었다. ‘이런 처지의 내가 결혼을 할 수 있을까’, ‘집안 사정을 털어놓았을 때 과연 온전한 결혼 상대로 보일까’라는 생각은 스스로를 옭아매는 수갑이 되었고, 결국 새로운 도전 자체를 포기하게 만들었다
.
처음 언급했듯, 결과적으로는 모든 것이 제자리를 찾았다. 그 10년 동안 우려했던 최악의 상황은 벌어지지 않았다. 부동산 경기가 가라앉고 경매가 쏟아지던 2023년, 나는 역에서 5분 거리의 32평 아파트를 매매해 독립했다. 서울 직장까지 도어 투 도어로 50분이면 이동할 수 있는, 분에 넘치게 좋은 환경이다.
또한 부모님의 단독주택은 재개발 시공사 선정을 마쳤고, 사업시행인가를 앞두고 있다. 대지가 34평을 넘어 권리가액과 프리미엄을 감안하면 향후 상당한 가치의 신축 아파트가 확보된다. 입주권을 매도하든 보유하든 부모님의 노후를 걱정할 일은 이제 없다.
경제적, 환경적 안전장치는 마련되었다. 다행스러운 일이다. 그러나 그 과정 속에서 소모된 내 자신을 돌아보면 복잡한 감정이 밀려온다.
결과는 얻었으나 과정은 혹독했고, 이제야 숨을 돌릴 만하다고 느끼는 순간 나이는 43살이 되어버렸다.
이 블로그에는 20대와 30대의 철없고 거침없던 시절의 기록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그 시절의 나에게 미래가 이렇게 결국 잘 풀릴 것이라고 미리 귀띔해줄 수 있었다면, 그렇게까지 스스로를 옥죄며 불안해하지 말라고 말해줄 수 있었을 텐데.
지나간 시간에 대한 씁쓸함과 안도감이 교차하는, 요즘의 솔직한 생각이다